배우는 법 배우기: 웹사이트를 만들며

1. 머리 대신 몸으로

배움의 시작은 ’이해’라는 머리의 저항을 우회하고 몸이 먼저 패턴과 리듬을 느끼게 하는 단계다. 이때 우리를 마비시키는 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무한한 자유, 즉 백지를 마주한 공포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제약은 우리를 보호하는 가장 자비로운 울타리이자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조건이다. 모든 배움은 거대한 미지의 세계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과 얼마간의 공포에서 시작한다. 텅 빈 텍스트 에디터의 깜빡이는 커서는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듯한 막막함을 안겨준다. 이 막막함 앞에서 ’죄다 이해하고 시작하겠다’는 결심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이해는 지도가 아니다. 이해는 오히려 이미 길을 걸어본 자에게만 주어지는 풍경에 가깝다. 따라서 첫 단계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유일한 태도는 똑똑해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어리석어질 용기를 내는 것이다.

튜토리얼, 자비로운 제약

초심자에게 “자, 이제 무엇이든 마음대로 만들어보세요.” 같은 말은 격려라기보다 가장 잔인한 형벌에 가깝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서 얼어붙게 만드는 까닭이다. 무한한 가능성은 무한한 망설임을 낳는다. 이때 잘 마련된 튜토리얼은 자비로운 제약을 제공한다. “일단 그냥 이것만 따라 하세요.” 이는 그림을 배울 때 근사한 그림 위해 트레이싱지를 대고 선을 따라 그려보는 것과 비슷하다. 이 행위 자체는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고, 심지어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연필을 쥐는 법과 손목의 힘을 조절하는 법을 익히며 곡선의 미세한 떨림을 손끝으로 감지하게 된다. 창의성이란 이처럼 기본적인 감각이 보정된 뒤에야 비로소 발현될 수 있다.

교육 심리학에서는 이를 ‘비계 설정’(Scaffolding)이라 부른다. 건물을 지을 때 임시로 설치하는 비계처럼 우리가 지금 수준에서는 해낼 수 없는 과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임시적인 외부 지원 구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튜토리얼은 이런 비계 역할을 한다. “이 버튼을 누르세요.”, “이 코드를 복사하세요.” 같은 지시 사항은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난간이다. 우리는 이 안전한 정원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도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 세계가 어떤 기본적인 원리로 구성돼 있는지 안전하게 익힐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건 결과물의 독창성이 아니다. 과정을 완주하며 얻게 되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신이 다루는 도구에 대한 원초적인 신뢰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단계

이 단계는 형식이 내용을 완전히 지배한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내용’을 만들려 애쓰면 안 된다. 이 단계에서 독창성은 독이다. ‘인지 부하 이론’(Cognitive Load Theory, CLT)에 따르면, 인간의 작업 기억 용량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저글링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공 세 개를 동시에 다룰 수 없듯 초심자는 새로운 형식(HTML, CSS, 자바스크립트 문법)과 새로운 내용(자신만의 글과 구조)이라는 두 가지 공을 동시에 저글링할 수 없다. 시도하려 하는 순간, 모든 공을 떨어뜨릴 뿐이다.

튜토리얼은 ’내용’이라는 공 하나를 우아하게 치워준다. “일단 내용은 신경 쓰지 마세요. 내용은 제가 드릴 테니 당신은 오직 공을 던지고 받는 ’형식’에만 집중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진 한정된 인지 자원을 오로지 형식을 익히는 데 집중할 수 있다. 튜토리얼에 흔히 등장하는 Hello WorldLorem Ipsum 같은 텍스트는 그저 자리 채우기용이 아니다. 지금은 내용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신호이자 형식을 익히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다. 아기가 ‘엄마’, ’아빠’라는 의미를 알기 전에 ‘마마’, ‘바바’ 같은 귀엽고 무의미한 소리를 반복하며 발성 기관(형식)을 연습하듯 우리는 <div>, <p> 같은 의미 없어 보이는 태그를 반복하며 코딩이라는 글쓰기를 위한 근육을 단련시킨다.

감각으로 익히는 문법

괄호, 세미콜론, 들여쓰기 등 처음에는 모두 외국어나 암호처럼 보이던 기호를 반복적으로 타자하다 보면 어느 순간 변화가 찾아온다. 뇌의 강력한 패턴 인식(Pattern Recognition) 시스템이 수많은 시각적 데이터 속에서 일정한 규칙과 흐름을 발견하고, 이를 무의식의 영역에 저장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예측 기계다. 정상적인 코드 패턴을 익힌 뇌는 코드를 읽는 순간 (인공지능처럼) 다음에 적절한 기호를 예측한다. 만약 닫는 괄호 하나가 빠졌다면 뇌의 예측과 실제 입력이 불일치하고, 어딘가 이상하다는 미세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코드가 지저분해 보인다’거나 ’마음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감각의 실체다.

이는 문법의 규칙을 의식적으로 떠올려서라기보다 수많은 시행 착오와 교정 속에서 어느새 패턴이 체화됐기 때문이다. 손가락 근육 또한 이 과정을 기억한다. <div>를 입력하면 자연스럽게 </div>를 함께 입력하는 근육 기억(Muscle Memory)이 형성된다. 소프트웨어 공학에서는 이런 직관적인 문제 감지 능력을 ‘코드 스멜’(Code Smell)이라 부르기도 한다. 당장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허점이 분명한 설계나 잠재적인 문제를 암시하는 코드의 ’냄새’를 맡는 능력이다. 숙련된 요리사가 소스의 농도와 향만으로 상태를 알아채듯 우리는 코드의 상태를 논리적 분석 이전에 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직관이야말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디딤돌이 된다.


결국 이 단계는 ’이해’라는 머리의 오만을 잠시 내려놓고, ’체화’라는 몸의 지혜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악기, 새로운 운동, 어떤 배움이든 첫걸음은 언제나 분석이 아닌 모방이며, 머리의 이해가 아닌 몸의 기억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그 어떤 복잡하고 추상적인 지식 체계라도 그것을 떠받치는 건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감각의 토대임을 깨닫게 된다. 그 단단한 토대 위에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만의 집을 안전하게 지어 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