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법 배우기: 웹사이트를 만들며

2. 걸작은 실패에서

1단계의 ‘안전한 정원’을 벗어나 이제 우리는 자신만의 ‘내용’을 담으려 시도하면서 ’형식’을 비롯해 ‘능력의 제약’과 처음으로 충돌하는 단계에 진입한다. 튜토리얼이라는 비계를 떼어내고 처음으로 내 발로 서려는 순간에는 필연적으로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이 단계의 핵심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의 구체적인 목록을 작성하는 데 있다. 여기서 실패는 끝이 아니라 의미 있는 배움의 시작을 알리는 데이터 생성 활동이다.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

1단계를 통해 기본적인 형식(문법)을 체화했다면 이제 창작의 첫 번째 욕망, 즉 ’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비로소 자신의 ‘내용’(자신이 쓰고 싶은 글, 올리고 싶은 사진, 전하고 싶은 메시지 등)을 엉성하게 배운 ‘형식’ 안에 구겨 넣기 시작한다. 이때 내용과 형식의 첫 번째, 그리고 가장 격렬한 충돌이 일어난다. 자신이 밤새워 심혈을 기울인 글(내용)은 웹 페이지의 <p> 태그(형식) 안에서 아무런 생명력 없는 답답한 텍스트 덩어리로 보인다. 어제 찍은 아름다운 풍경 사진(내용)은 정해진 레이아웃(형식) 안에서 끔찍한 비율로 잘려나가거나 엉뚱하게 늘어나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웹’이라는 매체의 특성, 즉 매체 특정성(Medium Specificity)을 처음으로 온몸으로 부딪혀 배우는 셈이다. 웹이라는 형식은 종이(내용)와 다르며, 사진 액자(내용)와도 다르다. 웹은 유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이며, 사용자의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자신의 고정된 내용은 이 유연한 형식과 지속적으로 싸움을 벌인다. 위대한 조각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제 막 끌과 망치를 쥐는 법(형식)을 배운 견습생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머릿속의 아이디어는 손끝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돌의 결(제약)은 계속해서 제멋대로 부서진다. 이 어설픔과 부끄러움의 근원은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이며, 이것이 바로 학습의 현실 단계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다.

능력의 제약이라는 이정표

이 단계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능력의 제약’이라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머릿속에 가득 찬 멋진 디자인과 기능, 그리고 그것을 구현할 수 없는 자신의 미숙한 기술 사이의 격차. 이 답답함이야말로 무엇을 더 배워야 할지 알려주는 가장 명확한 이정표다. 이전까지의 학습이 교과서 목차처럼 정해진 순서를 따르는 ‘만약을 위한 학습’(Just-in-case Learning)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필요에 따라 지식을 찾아 나서는 ‘적시 학습’(Just-in-time Learning)이 시작된다.

예컨대 ‘글자 간격을 미세하게 조절하고 싶다’는 욕망은 letter-spacing 속성을, ‘이미지를 비율에 맞게 화면에 꽉 채우고 싶다’는 욕망은 object-fit: cover라는 해결책을 찾아 나서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 ’버튼을 누르면 메뉴가 나타나게 하고 싶다’는 욕망은 자바스크립트의 addEventListener를, ’스크롤을 내려도 상단 바는 위에 고정시키고 싶다’는 욕망은 CSS의 position: sticky를 갈망하게 만든다. 이처럼 자신의 야망과 좌절이 만들어낸 필요의 목록은 어떤 훌륭한 커리큘럼보다 자신에게 맞는 개인화된 학습 로드맵이 된다. 능력의 제약은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니라 다음에 오를 계단을 비춰주는 전등이 되는 셈이다.

취향과 자아의 발견

미국의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This American Life)의 진행자 아이라 글래스(Ira Glass)는 이 상태를 ’자신의 취향은 탁월하지만, 실력이 아직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로 정의했다. 자신이 만든 것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건 역설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아는 ’안목’을 지녔다는 증거다. 이 단계는 자신의 정체성이 수동적으로 좋은 것을 받아들이던 ’소비자’에서 능동적으로 좋은 것을 만들려는 ’생산자’로 탈바꿈하는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이다.

이는 일종의 자기 객관화 과정이기도 하다. 심리학의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에 따르면, 초심자는 종종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1단계에서 튜토리얼을 성공적으로 마친 자신은 어쩌면 ‘이제 나도 좀 아는 것 같아…’ 같은 자신감에 차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2단계에서 자신의 첫 창작물을 마주하는 순간, 그 환상은 깨지고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를 처절하게 깨닫는 절망의 계곡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바로 이 계곡이야말 더 나은 자신으로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이제 완성된 결과물만 보던 순진한 소비자에서 벗어나 하나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이해하는 생산자의 눈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이때 느끼는 좌절은 생산자의 탄생을 알리는 값진 성장통이다.


성장은 야망이 능력을 앞지르는 그 고통스러운 지점에서만 시작된다. 우리가 느끼는 좌절감과 부끄러움은 실패의 증거가 아닌 더 나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겼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활시위를 당길 때의 팽팽한 긴장감처럼 이상과 현실의 격차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이 긴장감을 애써 외면하는 대신 배움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를 더 나은 자신으로 이끄는 첫 번째 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