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법 배우기: 웹사이트를 만들며

4. 가장 편안한 곳이 가장 위험하다

성장이 멈춘 듯한 정체기는 과거에 경험한 성공적인 ’내용, 형식, 제약’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가뒀을 때 찾아온다. 3단계를 지나 어느덧 대부분의 문제를 익숙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설렘은 사라지고, 어제와 오늘의 내가 똑같이 느껴지는 권태로운 시기, 즉 정체기가 찾아온다. 뇌가 특정 문제에 대해 가장 효율적인 스키마(schema), 즉 해결책을 찾은 뒤 더 이상 새로운 방법을 탐색하려 하지 않는 유창함의 저주다. 이 안락한 지금에 머무르려는 뇌의 강력한 관성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질서, 새로운 제약을 부여해 뇌를 다시 깨워야 한다.

익숙함의 감옥

정체기란 과거의 성공적인 제약 조건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나는 그냥 이 방식이 편해.“라는 자기 만족이 배움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제약이 된다. 2단계와 3단계에서 수많은 실패와 디버깅을 통해 얻은 자신만의 해결책과 작업 방식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피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 된다. 그 감옥의 벽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 역설적으로 과거에 성공한 경험으로 지어져 있다. 그 벽이 지나치게 편안하고 효율적인 까닭에 스스로가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렵다.

최적화 이론에서는 이를 ‘국소 최댓값’(Local Maxima)에 도달한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언덕의 꼭대기에 서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 너머에는 훨씬 더 높은 산, 즉 전역 최댓값(Global Maxima)이 자리한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서 있는 이 편안한 언덕에서 잠시 내려와 계곡을 건너가야 한다. 지름길은 없다. 즉, 일시적으로 실력이 줄고 비효율을 감수하는 과정을 거쳐야 더 높은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에너지 효율을 추구하는 까닭에 내리막길을 극도로 꺼리는 게 당연하다. 과거에 제이쿼리(jQuery)로 웹 개발의 정점을 찍었던 개발자가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리액트(React)뷰(Vue) 같은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복잡하고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것도 이와 비슷한 심리다. 게다가 익숙함의 감옥은 자부심이라는 간수가 지키고 있는 탓에 더욱 탈출하기 어렵다.

인위적인 제약을 통한 돌파

이 안락한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과감히 인위적인 제약을 부여해야 한다.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Anders Ericsson)이 주창한 ‘의도적 연습’(Deliberate Practice)의 핵심이다. 의도적 연습은 그저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단순 연습과 달리 명확한 목표를 삼고 자신의 기량보다 약간 더 어려운 과제에 집중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교정하는 의식적이고 괴로운 과정이다.

작가 닥터 수스(Dr. Seuss)는 출판사 대표와 단 50개의 서로 다른 단어만으로 책 한 권을 쓸 수 없다는 데 50달러 내기를 한 뒤 그 제약 속에서 『초록 달걀과 햄』(Green Eggs and Ham)이라는 걸작을 써냈다. ’단어 50개’라는 극심한 제약은 그를 평소에 쓰지 않던 창의적인 문장 구조와 리듬을 고안하게 만들었다. 제약이 오히려 그의 천재성을 폭발시킨 셈이다. 물론 우리도 이런 ’창의적인 게임’을 스스로에게 제안할 수 있다. 예컨대…

  • 기술 다이어트: CSS를 사용하지 않고 HTML만으로 웹사이트를 만들어본다. 또는 가장 자신 있는 자바스크립트 라이브러리를 쓰지 않고 순수 자바스크립트만 사용해본다. 처음에는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겠지만 라이브러리가 감춰온 언어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 0.1초도 너무 길다: 이미 완성된 웹사이트 로딩 속도를 0.1초 단축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본다. 이미지 압축, 코드 분할, 렌더링 최적화 등 이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영역을 깊이 파고들게 된다.
  • 원데이 프로젝트: 하루라는 시간 제약 안에서 아주 작은 웹사이트 하나를 기획부터 배포까지 마쳐본다. 시간 제약은 완벽주의를 버리고 핵심에 집중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자신을 불편하고 낯선 환경에 던지는 행위는 뇌의 굳어진 신경 회로를 끊고 새로운 연결을 강제한다. 이 불편하고 새로운 제약이 우리를 낡은 습관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의 해결책으로 이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숙련 과정의 역설, 즉 유능함이 성장의 가장 큰 적이라는 진리를 마주한다. 편안함과 효율성은 오늘을 유지하는 데는 최적이지만, 내일로 나아가는 데는 가장 큰 장벽이다. 뱀이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 자신의 낡은 허물을 벗어야 하듯 우리 또한 성장을 위해 한때 완벽하게 동작하던 자신의 유능함이라는 허물을 의식적으로 벗어던져야 한다. 진정한 성장은 익숙한 것을 더 많이 반복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불편하고 서툰 초심자의 위치로 되돌리는 용기에서 비롯한다. 위대한 도약은 언제나 가장 편안한 바로 그 지점을 박차고 뛰어오를 때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