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지도가 사라진 시대의 항해술
우리가 이제껏 물려받은 지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한때 대학교에서 배운 전공 지식이, 직장에서 익힌 기술이 평생을 먹고살게 해줄 자산이 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지식의 반감기는 해가 다르게 짧아지고, 어제의 혁신은 오늘의 낡은 것이 된다. 얄궂게도 우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지식이 끊임없이 낡아가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되고 말았다.
이 거대한 전환의 한복판에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라는 유능한 친구가 등장했다. 이 친구는 우리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정답에 가까운 (또는 정답처럼 보이는) 결과물을 쏟아낸다. 복잡한 코드를 순식간에 짜내고, 막힌 디자인의 실마리를 단숨에 풀어주며, 방대한 정보를 완벽하게 요약해 제시한다. 기술은 이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극단적으로 압축하거나 심지어 완전히 생략해버릴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 놀랍고, 심지어 아름다운 진보 앞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한다. 즉시 정답을 얻을 수 있는 오늘날 고통스러운 과정은 대관절 무슨 의미가 있을까? AI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인간이 굳이 서툴고 지난한 배움의 길을 걸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새로운 질서와 함께하는 이 웹사이트는 바로 그 질문을 향한 한 가지 대답이다. AI는 완벽한 코드를 쓸 수 있지만 코드가 작동하지 않아 밤을 새우는 좌절감을 느끼지 못한다. AI는 근사한 디자인 시안을 언제든 수백 개 제안할 수 있지만 자신의 취향과 실력 사이의 격차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AI는 ’체화’의 어색함, ’생산적 실패’의 쓰라림, ’디버깅’의 집요함, ’정체기’의 막막함, 그리고 마침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기쁨을 경험할 수 없다.
결국 AI 시대에 우리, 즉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중요한 가치는 결과물 자체라기보다 결과물에 이르는 과정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변화하는 자기 자신이다. 이 웹사이트는 특정 기술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낯선 세계를 마주하고, 실패하고, 해체하고, 돌파하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다시 정의해보는 아름다운 과정을 의식적으로 통과하는 과정, 즉 배움에 관한 탐구다. 나아가 하나의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배우는 법을 배우는 메타학습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 웹사이트는 그 여정의 구체적인 무대로 ’웹사이트’를 선택했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은 내용을 중심으로 논리적인 코드와 심미적인 디자인이 충돌하고 화해하며 즉각적인 시각적 피드백 속에서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경험할 수 있는, 오늘날의 창작 과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완벽한 축소판인 까닭이다.
이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단지 웹사이트 하나를 얻는 게 아니라 어떤 변화의 파도가 닥쳐도 기꺼이 자신만의 서핑 보드를 들고 나설 수 있는 ’배우는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마주한다. 유효한 지도가 사라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목적지가 아니라 어떤 파도 위에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능숙한 항해술, 즉 ’배우는 법’인 까닭이다.